대기업은 왜 직접 개발하지 않고 스타트업 기술을 살까?

대기업이 스타트업 기술에 협력 투자 인수하는 미래기술 확보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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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나 현대차, LG전자 같은 대기업을 보면 한 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돈도 많고 연구원도 많고 연구개발 조직도 갖추고 있는데, 왜 굳이 작은 스타트업과 손을 잡거나 수백억 원을 투자하고 때로는 회사 전체를 인수할까요? 필요한 기술이 있다면 직접 사람을 뽑아 개발하면 될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기업의 입장에서 가장 비싼 자원은 반드시 돈만은 아닙니다. 시간도 돈만큼 비싼 자원입니다. 새로운 기술 하나를 처음부터 개발하려면 연구원을 확보하고 조직을 만들고 수없이 실패하면서 기술을 축적해야 합니다. 그렇게 3년, 5년이 흐르는 동안 시장은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반면 어떤 스타트업이 이미 한 분야만 몇 년 동안 파고들어 기술과 인재, 시행착오를 축적해 놓았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대기업이 스타트업에서 얻는 것은 완성된 기술 하나만이 아닙니다. 그 기술을 만드는 데 들어간 시간과 시행착오, 사람과 경험을 함께 확보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다른 질문이 생깁니다. 그렇게 외부 기술이 필요하다면 유망한 스타트업을 발견하는 대로 그냥 인수해버리면 되지 않을까요?

직접 만들까, 손잡을까, 투자할까, 아예 살까

실제 기업의 선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새로운 기술이 필요해졌을 때 기업에는 크게 네 가지 카드가 있습니다. 직접 개발하는 Build, 외부 기업과 협력하는 Partner, 가능성을 보고 자금을 넣는 Invest, 그리고 회사를 인수해 기술과 인력을 내부로 가져오는 Buy입니다.

어떤 카드를 선택할지는 기술의 중요성과 시급성, 내부 개발 역량, 시장의 불확실성 등에 따라 달라집니다. 회사의 핵심 경쟁력이고 내부에 충분한 역량이 있다면 직접 개발할 수 있습니다. 외부의 뛰어난 기술이 있지만 아직 가능성을 검증해야 한다면 협력이 더 합리적일 수 있습니다. 기술은 유망하지만 시장이 어떻게 될지 확신하기 어렵다면 투자부터 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그 기술과 인재가 앞으로 회사의 핵심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면 아예 인수를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Build, Partner, Invest, Buy가 서로 완전히 분리된 네 개의 상자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기업은 상황이 바뀌면서 한 전략에서 다른 전략으로 이동하기도 합니다.

현대차는 왜 딥엑스를 인수하지 않고 함께 개발했을까

현대차그룹과 국내 AI 반도체 스타트업 딥엑스의 협력이 좋은 사례입니다. 딥엑스는 적은 전력으로 기기 자체에서 AI 연산을 수행하는 온디바이스 AI 반도체를 개발합니다. 현대차그룹에 필요한 것은 당장 딥엑스라는 회사 자체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이 기술이 실제 로봇 환경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지를 확인하고 활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회사를 통째로 살 필요가 없습니다. 기술을 함께 개발하고 실제 환경에서 검증하면서 필요한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 기술을 가진 회사를 소유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협력을 통해 기술과 시장의 가능성을 확인하면서 인수에 따르는 비용과 위험을 줄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기업 간 기술협력 뉴스도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단순히 “두 회사가 손을 잡았다”가 아니라 왜 이 회사는 투자도 인수도 아닌 협력을 선택했을까를 질문할 수 있습니다. 그 질문을 던지는 순간 기업의 전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LG는 왜 베어로보틱스에 투자한 뒤 결국 인수했을까

대기업 스타트업 투자가 기술 검증을 거쳐 인수로 이어지는 기업 전략

LG전자와 로봇 스타트업 베어로보틱스의 사례는 한 단계 더 흥미롭습니다. LG전자는 2024년 베어로보틱스에 6천만 달러를 투자해 약 21%의 지분을 확보했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회사를 완전히 인수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2025년 추가 지분을 확보하면서 지분율을 51%로 높이고 경영권을 가져왔습니다. LG는 베어로보틱스의 로봇 소프트웨어 플랫폼과 여러 로봇을 제어하는 기술 등을 자사의 로봇 사업과 결합하려는 전략을 추진했습니다.

이 사례에서 주목할 부분은 Invest에서 Buy로 이동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지분 투자라는 방식으로 관계를 맺었지만 이후에는 경영권 확보까지 나아갔습니다. 이를 두고 LG가 투자 기간 동안 기술을 시험해보고 확신이 생겨 인수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기업이 처음부터 하나의 전략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전략적 중요성과 사업 방향에 따라 투자에서 인수로 이동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기업의 기술 확보 전략은 일직선이라기보다 움직이는 지도에 가깝습니다. Partner에서 Invest로 갈 수도 있고, Invest에서 Buy로 갈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시장 상황이 달라지면 투자만 유지하거나 협력관계를 끝낼 수도 있습니다. 미래기술을 다루는 기업일수록 처음부터 모든 것을 확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회사를 사면 정말 끝일까?

스타트업 인수 후 기존 팀의 자율성과 조직문화를 유지하는 성공적인 기업 통합
AI 재현 이미지

여기까지 보면 Buy가 마지막 단계처럼 느껴집니다. 필요한 기술과 사람이 중요해졌다면 돈을 주고 회사를 사서 내부로 가져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 M&A에서는 어쩌면 이때부터 더 어려운 문제가 시작됩니다.

바로 Integrate, 인수 후 통합입니다.

회사를 인수하면 법적으로는 소유권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특허도 가져올 수 있고 제품과 브랜드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회사를 성공시켰던 사람들의 생각과 팀워크, 조직문화, 의사결정 속도까지 계약서에 적어서 가져올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회사를 인수하는 것과 그 회사의 능력을 인수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닙니다.

Microsoft는 GitHub를 샀지만 모두 Microsoft식으로 바꾸지 않았다

Microsoft가 2018년 GitHub를 인수한 사례는 이 문제를 생각하기에 좋습니다. Microsoft는 GitHub 인수를 완료하면서 GitHub가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개발자 중심의 철학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개발자들이 어떤 언어와 도구, 운영체제와 클라우드를 선택하든 계속 지원하겠다는 방침도 제시했습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원리가 숨어 있습니다. Microsoft는 GitHub를 인수했지만 GitHub가 가진 모든 것을 Microsoft 방식으로 바꾸는 것이 반드시 최선이라고 보지는 않았습니다. 대신 대기업이 가진 자원과 글로벌 사업 역량은 연결하면서 GitHub가 성장할 수 있었던 개발자 중심의 특성과 생태계는 상당 부분 유지하는 방향을 택했습니다.

이 사례를 보면 Integrate의 의미를 단순히 ‘두 회사를 하나로 합치는 것’이라고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무엇을 합치고 무엇을 남겨둘지를 결정하는 과정입니다. 회계나 법무, 인프라처럼 대기업과 결합했을 때 효율성이 높아지는 부분은 연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품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어떤 실험을 할 것인지 같은 핵심적인 의사결정까지 모두 대기업의 기존 결재구조 안에 집어넣으면 스타트업이 가지고 있던 속도와 창의성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스타트업이 자기와 달라서 샀는데 자기와 똑같이 만들어버린다면

반대편에는 Cisco와 WebEx의 사례가 있습니다. Cisco는 2007년 온라인 회의 서비스 기업 WebEx를 인수했습니다. 당시 WebEx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던 Eric Yuan도 Cisco에 남았지만 결국 회사를 떠났고 이후 Zoom을 창업했습니다. 인수 이후 기존 WebEx 조직의 방식과 새로운 방향을 둘러싼 문제가 그 과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사례를 모든 M&A 실패의 전형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스타트업 인수에서 무엇을 잃을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사례임은 분명합니다. 대기업이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자기 조직에 없는 기술과 사람, 빠른 의사결정 방식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수 직후 기존 팀을 해체하고, 핵심 인력을 의사결정에서 제외하고, 모든 업무방식을 대기업의 기존 방식으로 바꿔버린다면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대기업은 스타트업이 자기와 다르기 때문에 샀는데, 인수한 뒤 자기와 똑같이 만들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 순간 비싼 돈을 주고 확보했던 ‘차이’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사람 한 명보다 그 사람이 일하던 팀이 중요할 수도 있다

이것은 단순히 몇몇 기업의 일화만은 아닙니다. Google과 Meta가 인재 확보 목적으로 인수한 스타트업 241건과 창업자 454명을 추적한 연구에서는 창업자가 조직 안에서 영향력 있는 역할을 맡거나 자신들이 개발하던 기술이 인수기업에서 계속 활용될 때 조기 이탈 가능성이 낮아지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특히 기존 공동창업자 팀을 함께 유지하는 것이 장기적인 인력 유지와 관련된 중요한 요인으로 나타났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면도 있습니다. 회사의 간판과 최고경영진이 바뀌더라도 내가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그대로 있고, 우리가 하던 일이 중요하게 취급되며, 전문성을 인정받고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다면 일하는 환경의 핵심은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인수되자마자 기존 조직이 해체되고 자신들의 전문성이 무시된다면 직원들은 “회사는 우리 기술이 필요했을 뿐 우리는 필요하지 않았구나”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통합은 흡수보다 연결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대기업이 가진 자본과 고객, 유통망, 인프라를 스타트업에 연결하되 스타트업이 가진 전문성, 팀워크, 의사결정 속도까지 모두 없애지는 않는 것입니다.

이제 기업의 스타트업 투자 뉴스를 다르게 읽어보자

앞으로 “○○기업, AI 스타트업에 500억 원 투자”라는 기사를 보게 된다면 투자금액만 보고 지나칠 필요는 없습니다. 그 뒤에 훨씬 재미있는 질문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왜 직접 만들지 않았을까? 왜 협력을 선택했을까? 왜 인수하지 않고 투자만 했을까? 왜 어느 순간에는 아예 회사를 사버렸을까? 그리고 인수했다면 무엇을 합치고 무엇을 남겨두려 할까?

이 질문들을 하나씩 던져보면 기업의 행동 뒤에 숨어 있는 기술의 중요도와 시급성, 불확실성, 그리고 미래전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합니다. 결국 Build → Partner → Invest → Buy → Integrate는 어려운 경영학 용어를 외우기 위한 공식이 아니라 기업이 미래기술을 확보하는 과정을 읽어내는 하나의 렌즈입니다.

처음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보겠습니다. 돈도 많고 사람도 많은 대기업은 왜 스타트업을 찾을까요? 이미 스타트업이 축적해 놓은 기술만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기술을 만들기까지 들어간 시간과 시행착오, 사람과 경험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돈으로 이미 축적된 기술과 시간은 살 수 있어도, 그 기술을 만들어낸 사람과 조직의 능력을 계속 살아 있게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어쩌면 M&A의 진짜 실력은 좋은 회사를 찾아내는 순간보다, 그 회사를 산 다음부터 드러나는지도 모릅니다.


Q1. 대기업은 자금과 연구인력이 많은데 왜 모든 기술을 직접 개발하지 않나요?
직접 개발에는 돈뿐 아니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미 특정 분야에서 수년 동안 기술과 경험을 축적한 스타트업과 협력하거나 투자·인수하면 개발에 필요한 시간과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습니다. 다만 핵심 경쟁력으로 반드시 내부에 축적해야 하는 기술이라면 직접 개발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Q2. 스타트업과 협력하는 것과 투자하는 것은 무엇이 다른가요?
협력은 특정 기술을 공동 개발하거나 활용하는 데 목적을 둘 수 있는 반면, 투자는 지분을 확보하면서 기업의 성장 가능성과 기술에 보다 장기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입니다. 실제 기업에서는 협력과 투자가 동시에 이루어지기도 하므로 두 방식이 완전히 분리되는 것은 아닙니다.

Q3. 대기업은 어떤 경우 스타트업을 아예 인수하나요?
해당 스타트업의 기술이나 인재, 플랫폼 등이 자사의 미래 경쟁력에 중요하고 외부 협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할 때 인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다만 기술의 불확실성, 인수가격, 조직 통합 문제 등도 함께 고려해야 하므로 좋은 기술을 가진 회사라고 해서 반드시 인수하는 것은 아닙니다.

Q4. 스타트업을 인수한 뒤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요?
스타트업의 경쟁력은 기술만이 아니라 사람과 팀, 빠른 의사결정과 조직문화에서 나오기도 합니다. 인수 후 이것을 모두 없애고 대기업 방식만 강요하면 핵심 인재가 떠나거나 혁신성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공적인 통합에서는 무엇을 합칠 것인가만큼 무엇을 남겨둘 것인가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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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자료

  1. LG전자 — 베어로보틱스 지분 51% 확보 공식 발표
    LG전자 베어로보틱스 인수 공식 발표
  2. Microsoft — GitHub 인수 공식 발표
    Microsoft의 GitHub 인수 공식 발표
  3. Small Business Economics — 스타트업 인수 후 창업자 유지 연구
    스타트업 인수 후 창업자 유지 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