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반도체의 성능을 한계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후공정 패키징 전쟁이 치열합니다. 앞서 다룬 유리기판이 플라스틱 기판의 물리적 한계인 ‘워피지(Warpage, 휨 현상)’를 해결하는 차세대 ‘땅’이라면, 오늘 다룰 기술은 그 땅속을 파고드는 혁신인 ‘부품 내장형(Embedded, 임베디드) 기판’입니다.
아파트에 냉장고와 세탁기를 벽 안으로 집어넣는 ‘빌트인’ 시스템처럼, 이제 반도체 기판도 표면에 거추장스럽게 부품을 늘어놓는 대신 기판 내부 깊숙한 곳에 부품을 심어버리는 기술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왜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이 기술에 열광하는지, 그리고 왜 이 시장에서 대한민국 삼성전기가 독보적인 지위를 선점할 수밖에 없는지 구조적으로 분석해 보겠습니다.
1. AI 시대, 왜 기판 속에 부품을 숨겨야 할까?

스마트폰이나 메인보드를 뜯어보면 초록색 기판 위에 주 칩(AP나 CPU)이 있고, 그 주변에 깨알 같은 수동소자들이 징그럽게 박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수동소자 중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 바로 전류를 안정적으로 공급해 주는 적층세라믹콘덴서(MLCC)입니다.
하지만 AI 반도체는 처리해야 할 데이터와 소모하는 전력량이 상상을 초월합니다. 기존처럼 칩 옆에 MLCC를 멀리 떨어뜨려 놓으면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합니다.
- 전기적 이동 거리의 한계: 칩과 부품 사이의 거리가 멀수록 신호가 이동하면서 전력 손실(Power Loss)과 노이즈가 발생합니다. 1분 1초가 급한 초고속 AI 연산에서 이는 치명적인 병목입니다.
- 면적의 한계: AI 칩(GPU, HBM 등) 자체의 크기가 점점 거대해지면서 기판 위 공간이 턱없이 부족해졌습니다. 더 이상 주변에 MLCC를 깔 자리가 없습니다.
2. 임베디드 기판이 가져오는 3대 혁신: 속도, 전력, 소형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판 제조사들은 기판 내부에 미세한 홈을 파고, 그 안에 MLCC나 반도체 다이(Die)를 아예 집어넣은 뒤 뚜껑을 덮어버리는 임베디드 기판 기술을 완성했습니다. 부품을 숨기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 신호 전송 속도 폭발: 부품이 칩 바로 아래(지하실)에 위치하게 되면서 이동 거리가 획기적으로 줄어듭니다. 신호 지연이 사라지고 데이터 전송 속도가 극대화됩니다.
- 전력 소모 및 노이즈 30% 감소: 전류가 새어나갈 틈이 없어 전력 효율이 크게 개선됩니다. 엄청난 전력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AI 데이터센터 입장에서 비용을 아끼는 최고의 치트키입니다.
- 칩 두께의 슬림화(소형화): 기판 표면에 튀어나온 부품이 사라지니 반도체 패키지 전체 두께가 얇아지고 공간 효율성이 극대화됩니다.
3. 글로벌 유일의 ‘MLCC + 기판’ 연합군, 삼성전기의 독점적 구조

부품 내장형 임베디드 기판 시장이 열리자 일본의 이비덴, 대만의 유니마이크론 등 글로벌 기판 거인들도 부랴부랴 개발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투자 업계가 유독 삼성전기를 이 시장의 강력한 지배자로 꼽는 이유가 있습니다.
임베디드 기판을 만들려면 기판 안에 들어갈 ‘극도로 얇은 특수 수동소자(MLCC 나 실리콘 커패시터)’가 필수적입니다. 일반 MLCC는 두꺼워서 기판 속에 넣으면 기판이 터져버리기 때문입니다.
- 삼성전기의 독보적 지위: 삼성전기는 전 세계 하이엔드 MLCC 시장의 강자이자, 고성능 반도체 기판(FC-BGA)을 모두 자체 생산하는 글로벌 유일의 기업입니다.
- 타사(이비덴 등)들은 기판 안에 넣을 특수 MLCC나 실리콘 커패시터를 외부에서 비싸게 사 와서 조립해야 하지만, 삼성전기는 공장에서 기판과 내장형 부품을 한 번에 맞춤형으로 뚝딱 만들어 패키지로 공급할 수 있습니다. 기술적 마진과 가격 경쟁력에서 경쟁사들이 비빌 수 없는 독점적 생태계를 쥐고 있는 셈입니다.
- 최근 글로벌 대형 IT 기업과 조 단위 규모의 실리콘 커패시터(임베디드 기판용 필수 부품)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은 삼성전기의 이 독점적 구조가 시장에서 통하기 시작했다는 명확한 증거입니다.
4. 유리기판과의 만남: 3D 반도체 기판 시대의 도래
가장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앞서 다룬 유리기판과의 시너지입니다. 유리기판의 핵심 공정인 TGV(유리 관통 비아) 기술을 통해 미세한 구멍을 뚫고 전기 신호를 연결하면, 유리 기판 내부에 MLCC나 실리콘 커패시터를 임베디드(내장)하기가 기존 플라스틱보다 훨씬 정밀하고 수월해집니다.
기술의 박자가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고 있습니다. 표면은 매끄러운 유리 소재로 바꾸고, 그 내부는 부품을 빌트인으로 매립(임베디드)하는 형태가 바로 AI 반도체 후공정이 도달할 최종 목적지입니다. [2, 3]
결론: 눈에 보이는 현상 너머, 구조를 지배하는 자가 이긴다
주식 시장에서 사람들은 당장 눈에 보이는 ‘엔비디아 칩이 얼마나 팔렸나’, ‘HBM 수율이 얼마인가’ 같은 뉴스에 일희일비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투자자라면 그 화려한 현상 뒤에서 “초고속 연산을 가능하게 만드는 숨은 구조적 인프라”를 보아야 합니다.
칩이 아무리 빨라져도 전력이 새고 신호가 막히면 무용지물입니다. 기판의 공간 한계와 전력 손실이라는 거대한 병목을 해결하는 ‘임베디드 기판 기술’, 그리고 그 기술에 필요한 핵심 부품과 기판 제조력을 모두 양손에 쥔 삼성전기의 생태계는 앞으로 하이엔드 반도체 시장이 커질수록 대체 불가능한 뼈대가 될 것입니다. 현상에 속지 말고, 판을 바꾸는 숨은 힘에 주목해야 할 때입니다.
💡 자주 묻는 질문 (FAQ)
Q1. 임베디드 기판과 일반 기판의 제작 공정상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인가요?
일반 기판은 부품을 기판 표면에 장착하지만, 임베디드 기판은 일부 부품을 기판 내부에 매립합니다. 이 때문에 기판을 다시 눌러 만드는 재적층 공정과 내부 부품을 연결하기 위한 미세 도금 공정 등이 추가됩니다.
Q2. 실리콘 커패시터는 무엇이며 왜 MLCC 대신 기판에 내장되나요?
실리콘 커패시터는 유기물이 아닌 실리콘 웨이퍼 위에서 파운드리 공정으로 만드는 차세대 수동소자입니다. 두께가 머리카락 수준으로 극도로 얇으면서도 고온 환경에서 MLCC보다 훨씬 안정적이기 때문에, 초미세 임베디드 기판의 핵심 부품으로 급부상하고 있습니다.
Q3. 임베디드 기판은 왜 만드는 공정이 더 어려운가요?
부품을 기판 내부에 넣은 뒤 고온·고압으로 다시 적층해야 하고, 매립된 부품을 전기적으로 연결하기 위해 레이저로 미세한 구멍을 뚫고 도금하는 공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Q4. 임베디드 기판은 내부 부품의 불량을 어떻게 검사하나요?
부품이 기판 내부에 있어 겉으로 직접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X-ray를 이용해 내부 상태를 검사합니다. 따라서 검사 기술 역시 임베디드 기판 제조에서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 참고자료
1. [전자신문].삼성전기, 반도체 내장형 임베디드 기판 개발
2.[전자신문] 삼성전기가 연 ‘임베디드 반도체 기판’ 시장, 일본·대만도 경쟁 가세
3. [더벨]삼성전기, 글로벌 유일 ‘MCLL +기판’경쟁력 빛 본다.
4. 네이버 프리미엄콘텐츠 테크/재테크 전문 채널 분석 리포트 참조 (일부 유료 구독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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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반도체 후공정 2편]HBM 다음은 유리기판, 인텔·TSMC 패권 전쟁 속 한국 기업의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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